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하나 뿐인 마음 2013. 6. 10. 15:08

월모임을 끝내고 시작된 본원휴가 첫날.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침부터 외출을 서둘렀다. 마음을 텅 비우기는 너무 어려우니 속이라도 비우자 싶어 아침도 거르고 팔달교. 708번을 타고 신암성당 앞까지. 다시 808번을 타고 일심으로.

10시 미사인데 9시가 되기도 전에 도착. 어색. 뻘쭘... 일단 벽을 향해서 쇼파에 앉았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나는 정말이지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었지. 누군가가 와서 아는척을 한다. 환한 웃음으로 수녀님 이라길래 인사를 하고 나니, 로마나가 아니냐고 물어온다. 난감... 빠스카 덕분에 난 종종 '로마나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웃기는 웃지만 참 어렵다. 우째 살았을꼬 싶은 생각에... 난 그때의 로마나와는 참 다른데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책을 펴고 앉았는데 민혜씨가 아는척을 해온다. 물론 처음 만났다. 나더러 오랜만이란다. 근데 이 말이 예수님이 나에게 건내시는 말처럼 들린다. '로마나, 오랜만이구나.' 할말이 없다. 얼굴 가리고 모른척 하는걸 밥먹듯 하는 내게 스스럼없이 사람들 만나고 환하게 웃는 천사들은 좋은 선생님이지.. 얼른 친해져서 손잡고 장난도 치다가 내친김에 재활원 구경도 시켜준다. 좋다... 덕분에 여러명의 천사들과 인사도 나누고 시간도 얼른 지나갔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10시. 천사들과 미사를 시작한다. 어색하게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데 선생님 한분이 매일미사책을 챙겨주고, 천사들마저 반갑게 인사하고 아예 옆에 와서 앉는다. 난 이날 복음묵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로 앉아있는 내게 들려오는 말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음 깊이 남아있는 구절중의 하나. 근데 이날은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하시는 말씀이 귀에 울린다. 이는 믿는 이들의 표징이다. 내게도 이런 표징이 있는가.... 예수님 이름으로 내 맘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을 쫓아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내 입에 담아주신 사랑의 언어, 진실된 언어들을 말하고 있는가...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할줄 알면서도 손을 내밀고 있는가... 그들이 내미는 그 잔을 선뜻 받아들고 마실 수 있는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 바로 그 손으로, 주저하지 않고 뱀을 집어들고 잔을 마시기 위해 내밀었던 그 손으로 병자에게 얹는다면.... 병이 나을 것이다. 병이 나을 것이다. 병이 나을 것이다... 마음의 병이 나을 것이다....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취해서 강론도 제대로 못들었다. 예수님...

자장면 먹고 한티로.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한티 성지에서 나를 맞아주던 벚꽃.. 시원한 바람속을 거닐며... 또 한차례... 부끄러운 것도 잊은채 마음속의 잡다한 것들을 막 쏟아내던 시간...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내게 벚꽃을 보여주시고, 너무 많이 꽉 차서 이제는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만남도 마련해 주시고... 짙어지기 직전이 물머금은 연두빛을 보면서 그분 가르침을 다시 가슴에 새겨봤다.

처음으로 그렇게 천천히 운전하시는 걸 봤다. 지친 마음 달래보라고, 하느님 마련해주신 아름다운 것들 보면서 다시 정리해 보라고 천천히 가신다. 배려 받아도 고맙다는 인사 한번 못하는 나이긴하지만 하여간...

그래,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로마나,  하느님을 힘으로!!!